학살의 잔재 위로 아직 식지 않은 재가 공중을 부유하고 있었다. 방향성 없이 떠도는 검고 뜨거운 먼지들이 폐 안을 더럽히는 감각에 헉스는 약간 눈살을 찌푸리며 걸음을 옮겼다. 이종족의 피냄새는 인간이 불타는 냄새와 그닥 다를 바도 없었으나, 주변의 처참한 모습과 맞물려 끈적하게 녹아내린 모습들이 더욱 역겹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히 익숙하지 않아서이기 때문이다. 잔악무도한 퍼스트 오더에서도 이름높은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헉스는 살육을 즐기는 정신병자가 아니었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복종과 지배이며, 그의 이념과 미학에 맞지 않는 것들을 없애는 데 주저하지 않을 뿐이다. 그의 검은 구두 밑으로 질척한 핏물이 진득하게 늘어졌다. 붉은 빛 아래 점멸하던 별의 생명은 그렇게도 아름다웠건만, 그 드넓은 우주에 비해 하잘것없는 쓰레기들의 죽음이란 이다지도 의미가 없었다. 수거되지 않은 오물더미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헉스는 다시 한번 발 아래로 밟혀오는 이종족의 불탄 살점을 짓밟고, 그의 메마른 입술에 달라붙은 검붉은 먼지들을 짧게 혀로 훑었다.
카일로 렌은 살육의 흔적에 녹아든 것처럼 보였다. 혹은 그 재와 피의 늪에서 솟아나온 어떤 존재이거나. 렌의 발치에 길게 늘어진 검은 옷자락들이 온통 피범벅이었다. 그의 주변에 아직도 멈춰 있는 블라스터들의 불꽃이 현실감을 함께 죽였다. 헉스가 다가오자, 카일로는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주변의 참상과는 다르게 그의 모습은 땅에 끌려 오염된 그 옷의 일부만을 제외한다면 어느 한 군데 흐트러짐 없이 단정했다. 살아있는 피부의 어느 곳도 내보이지 않는 모습 그대로, 날이 잔뜩 서린 시선만이 헉스를 향해왔다. 그의 손에 들린 라이트세이버는 날을 감춘 채였다. 헉스는 카일로와 짧게 눈을 마주쳐준 후 고개를 돌려 그가 내려야 할 명령들을 내렸다. 주변에 널린 반란군의 몸뚱이 중엔 아직 숨이 붙어 산 것들이 있었고, 헉스의 명령에 따라 머리부터 성대까진 멀쩡해 그나마 정보라도 캐낼 수 있게 남아있는 것들을 트루퍼들이 주섬주섬 챙겼다.
이미 정리된 상황이었기에 헉스가 대동한 트루퍼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고, 그들이 카일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명령을 해치우는 동안 헉스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카일로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포스로 멈춘 블라스트들은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헉스는 무심코 그 스파크들이 어지럽게 그리는 벡터의 끝을 찾는다. 그 모든 것이 오로지 카일로 렌 하나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쏟아진 것들이었다. 헉스는 그 중 유달리 눈에 띄는 것을 하나 눈여겨보았다. 렌의 목을 노리고 쏘아진 것이었다.
장군님, 모두 수거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트루퍼 중 하나의 질문에, 헉스는 눈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 돌아가서 대기해라. 렌과 잠시 할 이야기가 있으니. 수긍한 트루퍼가 다른 이들을 이끌고 자리를 떠나자, 이제 그 곳에 남은 생명이라고는 헉스와 카일로 렌 뿐이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닿을 것 같은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멈춰진 그 위협들이 별 게 아닌 것처럼 카일로는 가볍게 몸을 틀어 유연하게 그 사이를 빠져나왔다. 카일로의 영향 아래에서 벗어나자, 불꽃들이 서로 부딪히며 섬광이 비쳤다. 땅이 울릴 정도의 진동에도 카일로의 발걸음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헉스는 도착한 이래 여전히 그가 선 자리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은 채, 카일로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둘의 거리는 이제 매우 가까워졌다. 불편한 정적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드물게도 카일로 쪽이었다.
여기까지 행차하다니, 장군답지 않군.
의미를 얘기해주겠소?
전장을 싫어하지 않나.
그 문장에는 오류가 있었다. 헉스는 저를 향해 다가오는 그 검은 존재감을 느끼며 그런 생각을 할 뿐이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그에 대해 할 말과 그가 할 수 있는 처치가 많았겠지만, 마음을 읽는 자 앞에서는 어떤 말도 부차적인 것처럼 거슬리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그의 정신이 오해받을 일이 없다는 뜻이고, 헉스 스스로도 규명하지 못하는 그 자신의 모순도, 어떤 의식도 있는 그대로 관음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헉스는 카일로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의 정신에 침입할 때마다, 그가 알지 못했던 어떤 상처들이 터져 흐르는 듯한 불편한 만족감을 느끼는 스스로를 알았다. 차갑게 식은 공기와, 발치로부터 길게 새겨진 말라붙은 핏자국들. 전장에서 돌아온 카일로 렌에게서는 언제나 불길의 냄새가 났다. 어느새 둘 사이의 거리는 팔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두꺼운 마스크 사이로 고요하게 갈무리된 낮은 숨소리가 들렸다. 헉스는 주저없이 손을 뻗었고, 그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던 렌은 침묵으로 헉스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마스크의 잠금장치는 경동맥이 올라가다 가지를 뻗는 부근 근처에 있었다. 질 좋은 검은 가죽에 감싸인 헉스의 손끝이 미끈한 금속의 표면을 더듬다가 이내 찾던 스위치를 눌렀다. 차칵, 하는 소리와 함께 코와 입을 덮고 있던 파츠가 움직이자 손을 떼어낸 헉스는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섰다. 이 거리는 원하는 것을 시야에 담기엔 지나치게 가깝다. 그제서야 초점이 맞물리듯 틈 사이로 드러난 새하얀 턱이 시선을 끌었다. 피도, 재도 닿지 않은 메마른 입술과, 그 사이로 흩어지는 건조한 호흡. 카일로는 천천히 마스크를 벗는다. 헉스는 그의 검은 머리카락이 느릿하게 창백한 색을 한 이마와 목덜미로 떨어져내리는 모습을 그저 보고 있었다. 가끔 보이는 어떤 경외도, 기저에 짙게 깔린 분노와 증오도 아닌,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새파란 눈을 한 채였다. 그가 느끼는 것이 무엇이든 카일로 렌은 그를 읽고 있을 테고, 어차피 감정이란 향하는 상대에게 닿기만 한다면 기실 스스로에겐 이다지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죽은 것처럼 가라앉은 검은 눈이 그 자리에 있었다. 언제나 지나칠 정도로 제 감정의 고삐를 놓아 버린 주제에, 이다지도 타인의 감정에 무관심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카일로 렌의 오만한 점이라는 게 헉스의 감상이다. 혹은, 그런 사실에 신경을 쓰는 스스로의 자만심도 어느 정도 구역질이 나지 않느냐고 이성이라 부르는 무언가가 자조적인 사족을 달았다. 카일로 렌은 헉스의 시선이 그의 맨얼굴을 마음껏 꿰뚫도록 내버려둔 채로, 그와 그의 검이 만든 폐허를 다시 한번 시선에 담는다. 붉은 광기와 검은 악의를 토해내고 난 후의 남자의 핏기 없이 새하얀 얼굴은 그 곧은 선들과는 어울리지 않게 유약해 보이는 구석이 있었다. 스스로의 발작에 지쳐 쓰러진 어린아이 같다고, 헉스는 생각한다.
어떻게 포장하려 해도, 저열한 욕망이었다. 그가 갖지 못한 무기와, 다루지 못한 부하와, 지배하지 못한 별에 대해 느꼈던 그 고통처럼. 무표정의 가면을 쓰고 그가 소유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스스로가 직시하지 못했던 감정의 결과로 행해온 파괴와 폭력에 대해 헉스는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는다. 더 큰 선, 그가 넘을 지평의 뒤를 위해 포기했다고 위안한 적도 있었으나 그것도 좀 더 치기어린 시절의 일이다. 헉스는 솔직하게, 카일로 렌을 욕망하는 그 자신을 인정했다. 이미 곪을 대로 곪아 버린 상처이되, 그로 인해 스스로가 죽을 바에는 도려내는 편이 나았다. 단지 간과한 점이 있다면, 그 대상이 헉스가 마음대로 파괴하기에는 지나치게 강했다는 데에 있었다. 헉스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솔직하게 말하겠소.
장군이 날 죽일 작정으로 여기 보냈다는 사실이라면, 굳이 듣고 싶지 않군.
앞으론 이런 미션에 당신을 투입하는 일은 없을 거요, 렌.
헉스는 카일로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몸을 돌렸다. 잠시간의 침묵 후에, 둔한 발걸음 소리가 그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