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온전한 것이 견딜 수 없어지곤 하는 순간이 있었다. 결핍과 고통으로써 완전해지는 것에 대한 갈구는 모순적이었지만 그 간극에서 힘을 이끌어내는 것이 시스의 본능이었으므로 사실 그의 열망은 그다지 틀린 것이 아니라 볼 수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카일로 렌은 언제나 파괴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렸다. 그 자신을 부수고 싶은 욕구였다. 벌어진 상처에 손가락을 박아넣으며 그는 짐승처럼 몸을 떨었다. 부서진 의료용 드로이드의 잔해들이 나뒹구는 사이에서 그의 모습은 섬망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양처럼 어딘지 유약한 구석이 있었다. 죽어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동정할 필요가 없고, 그저 단순히 스스로를 상처입히는 그 작태에 헉스는 순전한 경멸만을 느꼈다. 기실 그의 경멸마저도 사치스러운 것이다. 모든 것을 가진 주제에 스스로가 무엇도 가지지 못한 양 구는 남자의 정신은 언제나 위태롭고, 그걸 가리는 마스크가 사라진 지금은 지나칠 정도로 명백해서 헉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탓이다.
수술이 끝나고 제일 먼저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한 일이 자신의 수술부위를 헤집어 터뜨리는 거라면 그 어리석음에는 할 말이 없었다. 헉스는 차가운 시선으로 렌 기사단을 이끄는, 퍼스트 오더의 가장 강한 개인 전력이 얼마나 스스로를 함부로 취급하는가를 바라본다. 다크 사이드는 고통과 증오로 강해진다고 수프림 리더가 말했지만, 카일로 렌의 모든 어둠은 결국 스스로에게 날을 세운 채 자신을 좀먹고 있었다. 먹을 줄 아는 게 제 몸뚱아리일 뿐인 육식동물의 종말이란 결국 죽음뿐이라는 것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타인의 피와 땀만을 이용해온 헉스에게는 사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 눈앞의 남자였다. 단순히 경멸하기에는 너무 고귀하고, 그렇다고 그 강함에 굴복하기엔 그 허약한 모양새에 구역질이 났다.
한심하기 짝이 없군, 렌.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카일로의 포스 그립이 헉스의 목을 붙잡았다. 공중에서 발이 떨어지는 감각을 느끼기가 무섭게 기도가 조여들고 숨이 막혀오는 것에 헉스는 이를 악물었다. 카일로는 아직 진정제에 취해 반쯤 풀린 눈을 한 채로 한 손을 뻗어 그에게 포스를 행사하고 있었다. 곧은 선을 그리며 불규칙적인 호흡을 따라 들썩이는 새하얀 어깨와 엉망으로 흐트러진 채 상처난 얼굴 위로 아무렇게나 흩어진 검은 머리카락이 만드는 표정이 울다 지친 소녀처럼 연약해 보일 지경이었다. 차라리 상처입은 개새끼가 더 사랑스럽겠지만. 헉스는 카일로와 시선을 맞춘 채, 짓눌러 움직이지 않는 성대 대신 입모양으로 말했다.
약해빠진 패배자 새끼.
카일로의 눈이 분노로 타올랐다. 순간적으로 목을 조르는 힘이 강해졌다가 헉스의 의식이 끊기기 직전에 사그라들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헉스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스스로의 목을 매만지며 기침을 했다. 갑자기 몰려든 산소에 졸린 목보다 머리가 더 아팠다. 고개를 들자, 정신을 차린 것처럼 차갑게 식은 눈을 한 렌 기사단의 단장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 짐승처럼 몸부림쳤냐는 듯 가라앉은 표정에 헉스는 헛웃음을 치며 몸을 일으켰다. 카일로가 반쯤 무의식적으로 뜯어내며 엉망이 된 복부의 드레싱 위로는 여전히 붉게 피가 번져나오는 채였다.
내 라이트세이버는 어디에 있지.
그 잘난 포스로 찾아보는 게 어떻소?
굳이 장군의 품 안을 뒤지고 싶진 않군.
오만하기까지 한 목소리는 마스크를 쓴 때의 그것이었다. 헉스는 그의 코트 주머니에 들어 있던 카일로 렌의 라이트세이버를 꺼냈다. 얼어붙은 채 무너져가던 행성에서 카일로 렌과 함께 그가 주워 온 수득품이었다. 그가 낀 검은 장갑을 뚫고도 전해지는 열기는 그 안에 박힌, 오로지 강한 파괴력만을 위해 정제된 불안정한 인공 광물 탓일 터였다. 스스로의 혼돈을 내보이지 않으면 강한 체 할 수도 없는 그 모양새가 꼭 제 주인을 닮았다고, 헉스는 생각했다.
카일로 렌은 헉스의 손에 들린 제 라이트세이버를 빤히 바라보았다. 포스를 쓰지 못하는 헉스로서는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읽을 수 없었고, 굳이 읽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카일로가 손을 뻗자 라이트세이버는 너무나도 쉽게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라이트세이버를 쥐어든 맨살이 지나치게 이질적이었다. 카일로는 라이트세이버를 보던 눈을 들어 헉스와 시선을 마주했다. 헉스는 보기 드문 참을성을 발휘하여 카일로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한참만에 카일로가 반쯤 갈라진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지쳤어.
사치스럽군.
그래.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헉스의 말에 카일로는 짧게 웃었다. 자조적이기 까지 한 웃음에 헉스는 소름이 돋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너무나도 쉽게 제가 인간임을 증명하려 드는 카일로 렌의 오만함이야말로 그가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헉스 스스로가 갈구하는 지배와 권력의 냉엄함이 가장 멀리해야 하는 감정들을 온 몸에 휘감고 다니는 것은 이 우주에서 정말로 지나칠 정도의 사치임이 분명했다. 제 스스로를 검은 늪에 빠뜨려 죽이기 위해 사는 삶이었다. 그야말로 이 우주에서 가장 소모적인 행위였던 것이다. 헉스는 그렇기에 카일로 렌의 고통과 증오가 갖는 지독한 개인주의를 경멸했다. 헉스가 원하는 이 우주를 인간 하나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그 꼴에는 경멸 정도가 적절한 감정이었다.
카일로 렌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은 얼음처럼 불안정했다. 지독하게 얼어붙어 제게 닿는 이에게 상처를 입힐 정도가 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것이다. 헉스는 카일로 렌의 유약함을 동정하지 않았다. 단지 언젠가 그가 완전히 부서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 끝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그러한 감정의 기원이 어디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헉스는 스스로의 감정을 정의하지 않는다. 눈앞의 유약한 남자는 결국 제 마스크 안에서 죽어갈 것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