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일로 렌은 빛이 사라진 곳에서만 레이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그 암묵적인 허락에 대해서 남자는 단 한번도 의문을 제기한 적이 없었으나, 그의 날선 시야로도 완벽한 어둠 속에 묻혀버린 자신보다 훨씬 작고 가는 몸의 세밀한 생김새를 알아보는 것은 어려웠기에 그들의 만남에서 그녀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게 그저 얼룩처럼 신경이 쓰이는 점이었다. 대신에 어떤 것들은 눈으로 보는 거리보다도 더욱 가깝게 와닿는다. 조금 높은 체온과, 작은 짐승이 대개 그렇듯 빠르게 뛰는 심장과, 암흑 속에서도 나직하게 느껴지는 고요한 숨소리 같은 것들이 그랬다. 그리고 목을 죄어오듯 그를 붙잡는 레이의 포스. 상대를 질식시키기 직전에 간신히 닿는 걸 멈춘 처절한 살기의 흔적. 카일로는 그 칼끝에서 떨리지 않는 동요를 맛본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끝이 제 심장에 파고드는 순간이 다가올 것임을 상기한다.
레이는 어둠 속에 그녀를 던진 채로 스스로를 파괴하고 싶을 정도의 슬픔을 느꼈다. 분노가 거세되어버린 그녀의 우울함은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하고, 그녀가 타고난 무언가는 무기력을 쓸모없는 것으로 규정하도록 선택된 것처럼 레이 스스로를 바닥 없는 검은 물 안에 던지도록 이끈다. 결국 삶을 포기한다는 것은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나보다 먼저 사라져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레이는 지금까지 그녀를 상처입힌 수많은 것들을 생각한다. 허기와 폭력, 고독으로 점철된 유년기는 그녀를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들었으나 동시에 레이 스스로도 잡을 수 없을 만큼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이 된 채였다. 단 한 번이라도 눈을 감은 채 휘두른다면 스스로의 손을 베어낼 게 분명하다. 레이는 조소한다. 이미 몇 번이나 그녀는 암흑 안에 있었지 않은가.
이 남자를, 팔에 안고.
카일로에게 닿을 때마다 레이는 파괴된 별과 죽어가던 은하를 생각했다. 붉은 빛 아래 수백만의 목숨을 너무 쉽게 앗아갔던 그 파멸과 함께 나타났던 남자의 검은 가면과 기계처럼 가라앉은 목소리. 족쇄처럼 그녀의 팔다리를 죄어 오던 포스. 그렇게 갈라진 상처를 공포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몇 번이고 헤집고 나자 그 자리에는 카일로 렌이 들어올 만큼의 공간이 뚫려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 안은 오로지 어둠이다. 그녀가 가진 어떤 빛을 비추더라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늪을 인지할 때마다 그녀는 그 상처의 주인이 그녀를 찾아오길 기다리곤 했다. 렌 기사단의 단장은 그녀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그녀가 죽고 싶어질 때마다 레이의 앞에 나타났다. 이제는 거의 습관이 된 동작으로 남자의 시야를 제 포스로 완전히 묶어 차단하고 나서야 레이는 남자에게 손을 뻗는다. 그의 어떤 시선도 그녀에게 닿을 수 없도록.
카일로는 장갑을 벗지 않은 채였다. 피와 폭약의 냄새가 진득하게 밴 검은 가죽이 곧은 선을 그리는 목덜미를 지나 제가 만지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기 위해서인 듯 레이의 턱과 입술 사이를 잠시 헤맸다. 레이는 카일로의 손길이 마음대로 그녀의 얼굴을 더듬어 귓가를 지나 완전히 그녀를 제 품에 안듯 감싸는 것을 방치하는 것처럼 허용하고 있었다. 카일로의 긴 손가락은 반쯤 흐트러져 삐져나온 머리카락의 한 갈래를 따라 다시 아래로 향한다. 어깨보다 한참 아래, 레이의 머리카락의 끝은 그녀의 심장 근처에서 조금 굽어진 채 끝났다. 카일로는 전해지지 않는 그의 손 끝의 감각을 상상한다. 아마도 수많은 별빛에 바싹 메말라 윤기 없이 색이 바랜, 그가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어떤 색채를 갖고 있을 게 분명했다. 카일로는 완전한 암흑 속에서, 그가 사랑하는 여자가 그녀의 암흑을 제 존재로 채워가고 있는 동안 그저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허용된 것은 오로지 마지막 순간이다. 수백 년에 한번 찾아오는 완벽한 일식에서 행성 전체가 암흑에 물드는 찰나의 순간을 염원하듯 카일로는 그의 시야에 빛이 찾아드는 그 때가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원하는 한 줄의 문장을 찾기 위해 수천 권의 책을 뒤지는 행위가 고통스럽지 않을 유일한 이유는 그것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음에 존재하는 것이다. 레이의 포스가 그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순간, 그의 시야에 빛이 점멸한다. 갑작스럽게 빛에 노출된 그의 망막은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 아주 찰나 동안에는 아무것도 시야에 담지 못하고, 정상적인 시야를 회복했을 때에 이미 그녀는 닿지 않은 곳까지 멀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인지하지 못한 레이의 모습이 그의 안에 남아 있음을 그는 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다지도, 눈부심이 강하게 남을 리가 없었던 탓이다.
카일로는 눈을 질끈 감아 맺혀 있던 물기를 아무렇게나 흐르도록 내버려둔 채로, 안으로부터 점점 부서져 가고 있는 그 고고한 제다이 나이트를 또다시 찾아갈 날을 생각한다. 여전히 다룰 수 없이 너무 강한 빛에 완전히 시력을 잃어버릴 날도 그리 멀지 않은 듯했다. 몇 개의 별이 죽었던가. 카일로는 그 빛나는 제다이 나이트를 찾기 위해 헤맨 자리에 살아있던 것들이 많았음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는 죽어버린 별들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거기에 제 발을 디뎠던 레이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사라진 후에 남겨진 것들은 아주 오랫동안, 그 별들의 죽음과 함께 그녀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그것이 카일로 렌이 제 빛을 향해 바칠 수 있는 유일한 헌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