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이상한 곳에서 무방비한 데가 있었다. 모든 동작과 행동에 있어 제가 어떻게 보일까를 계산하고 사는 것처럼 단정하기 그지없건만, 그 연속을 만드는 사소한 틈마다 내보이는 작은 마찰 같은 것들이 에그시 언윈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제대로 기름칠이 되지 않은 경첩에서 나는 소리가 머리에 파고들어 떨어지지 않듯, 그런 종류의 상념이란 한 번 각인되면 항상 생각나서 사람을 괴롭히기 마련이었다. 해리 하트의 무방비함은 확연하게 그런 종류의 것이다. 물론, 소음과는 달리 에그시 언윈은 해리 하트의 일상에 산재한 마찰을 불쾌함으로 단순하게 규명짓지는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해리 하트가 제 약점을 내보이는 걸 즐기는 인간이란 뜻은 아니다. 킹스맨 모두가 제 약한 데를 감추는 일엔 도가 터 있었으나, 그중에서도 해리 하트라는 남자는 자신의 약점을 그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감추는 사람이다. 총이든 뭐든 무기를 들고 대면했을 때 (혹은 맨주먹으로라도) 공격해 들어갈 구석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몇 번 몸을 맞대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혹은 서로 몸을 섞을 때도 그렇다. 저보다 오래된 세월의 흔적은 흔적마저 희미해진 흉터들과 생기가 부족한 메마른 피부에서도 두드러졌으나, 굳은살이 박힌 에그시의 두꺼운 손 아래에서 움츠러드는 법 없는 긴 손가락이나 마른 다리 안쪽이 그리는 선 같은 것들이 그랬다.
혹은 항상 그를 찔러오는 말 한 마디 같은 것들.
나는 아직도, 네가 이런 짓을 좋아하는 이유를 모르겠구나.
끈적거리고 질척이는 것들로 엉망이 된 하반신을 넓은 침대 위에 늘어뜨린 채로, 남자는 말했다.
에그시 언윈은 그런 말에 대해 몇 번이고 상처입었으나 동시에 그 때마다 노출되는 해리 하트라는 남자의 약함에 중독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 처음에는 그마저도 받아들이기 힘들어 그런 말 하지 말라며 덜덜 떨었던 것이 아주 예전의 일이었다. 그럴 거면 왜 나를 거부하지 않았어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듣는 것을 포기한 것도 비슷한 시기의 일이다. 수용이 빠르다는 점에서는 어머니의 가장 싫은 점을 닮고 말았다고 에그시 언윈은 때때로 생각한다. 자신보다 먼저 죽을 남자를 사랑하고 말았다는 점에서도 모자는 닮은 데가 있었는지 모른다.
당신이 죽지 않고 돌아왔기 때문이죠. 에그시는 대답한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그러나 느릿하게 깜박이는 눈에서, 몇 번이고 이로 짓이겨져 부르튼 얇은 입술에서 에그시 언윈은 해리 하트의 틈을 읽는다. 제 자신이 더럽혀졌다고 쉽게 던져버린 제 목숨만큼의 약함에 대해 에그시는 보상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빚을 갚기 위해 했던 모든 일들이 그런 거라면, 당신은 살아남았어야 했어요. 피할 수 있었던 발렌타인의 총을 맞고 그 더러워진 갤러해드의 이름을 내게 남겨주는 게 아니라.
갤러해드는 가장 완벽한 기사의 이름이었다. 원탁이 의미가 없어진 시대에도, 새 기사를 표방하는 이 제멋대로인 집단에서 그 이름을 갖고 있던 남자가 어떤 존재였는가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을 게 분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리 하트의 무방비함은 언제나 이런 종류의 것이었다. 애초에 임무 중의 사망에 대해 그 아들의 인생을 책임지겠다고 나서고, 제가 키운 개를 차마 묻지도 못하고 영원히 박제해서 바라보거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그의 임무마다 헤드라인을 스크랩해 벽에 붙여놓는 것들이 무엇을 시사하는가를 에그시 언윈은 알았다. 완벽한 인간인 체 했으나 그 감정에 휩쓸려 당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결국 그였다.
킹스맨에 발을 담근 후, 빚을 갚겠다면서 그 아들을 아버지가 죽은 집단으로 끌어들이는 게 해리 하트의 책임지는 방식이라는 데에 에그시 언윈은 단 한번도 불만을 가져본 일이 없었다. 밑바닥에서 헤엄치던 그의 인생이 맞춤 수트를 입고 쓸 시간도 없는 돈을 받으며 세계를 구하는 의의를 갖게 되었다는 데에 그는 물론 감사한다. 그러나 그런 비뚤어지고 편협한, 약해빠진 방식으로밖에 저를 표현할 줄 몰랐던 해리 하트라는 남자가 그 가장된 완벽을 완성하고자, 양손에 피를 묻힌 채 타의적 자살을 택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신은 킹스맨으로 돌아와선 안되는 거였어요, 해리.
적어도 갤러해드라는 이름을 내가 갖게 된 한은 말이죠. 뒷말은 언제나 에그시 언윈의 목 안에서만 맴돈다. 해리 하트는 그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언제나처럼 눈을 감아버리고 만다. 그 시야를 가리는 안경도, 몸을 감싼 수트도 없이 드러난 남자의 몸은 그 인상과 맞물려 안쓰러울 정도로 연약해 보인다. 그러나 이 남자가 이 세상에서 이렇게 무방비해지는 것도 유일하게 에그시 언윈의 앞이기 때문에, 단지 그 사실만으로도 에그시는 만족한다. 그리고 다음의 정기 모임에선 언제나처럼 단정한 모습과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맞은편에 이제 갤러해드가 아닌 다른 이름을 달고 앉아 있을 남자의 모습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