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일로 렌의 얼굴에 새겨진 흉터는 깊었다. 빠른 시간 내로 억지로 아물어 붙게 하기 위해 덧씌워진 가짜 조직 위로 촘촘하게 여며진 봉합의 선을 따라 레이의 손가락이 움직인다. 창백한 뺨과 긴 목, 두꺼운 쇄골을 가로질러 가슴팍까지 이어지는 긴 상처는 오로지 그녀가 만들어 새긴 것이었다. 반대쪽 어깨에 일그러진 화상 자국 역시도 그녀로부터 기원한 상흔이다. 카일로는 레이의 손끝이 제 몸을 더듬는 동안 눈 한번 깜박이지 않은 채 레이를 보고 있었다. 일렁거리는 검은 눈동자는 메스꺼울 정도로 어지럽고, 레이는 거기에 아주 잠깐 제 시선을 담궜다가 다시 눈을 돌린다.

레이는 그녀의 것이 아닌 어떤 기억을 떠올린다. 욱신거리는 통증을 가면 아래에 감추고, 제가 입은 상처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를 악물고 말하던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서 울렸다. 카일로 렌에게는 너무 많은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의 손에서 죽어간 수많은 생명도, 그가 파괴한 너무 많은 삶과 그가 도려내고 망가뜨린 모든 것이 그에게는 그 어떤 의미도 남기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무것도 아닌 모든 것으로부터 고통받는 남자는 비참하고 가련한 존재였다. 혐오스러울 만큼 불쌍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의 짧은 일생은 수많은 삶과 죽음에게 가치를 부정당한 순간의 연속이었으나 레이는 단 한번도 그 어떤 것이 제게 상처를 남겼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굶주린 낮과 깊게 잠들 수 없는 밤으로부터 자라난 삶에서, 타인의 악의나 하루의 애정 같은 건 사막의 모래바람보다도 물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눈앞의 남자는 오로지 수분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얼음처럼 차갑게 그녀의 외로움을 후벼파던 눈은 이제 물처럼 흘러, 검은 동공을 적시고 그녀가 새긴 모든 상처를 덮는 것 외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처럼 연약하다.

레이는 자신이 손상시킨 어떤 생물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너무나도 짧은 시간 동안 그녀가 이 우주에 남긴 것 중 가장 잔악하고 흉칙한 것이 무엇인지를 본다. 카일로 렌이라 불렸고 벤 솔로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의 몸에 새겨진 깊은 흉터에서 레이는 매일 밤 자쿠에서 그녀의 낡은 벽에 새겼던 작은 흔적들을 떠올렸다. 레이, 라고 불리는 한 사람이 살아있음을 증거하는 파편이었다. 

손이 닿아버린 것을 사랑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었으나, 레이는 모든 일에 그러했듯 아주 쉽게 카일로 렌을 사랑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붙일 수 있는 감정에는 수많은 이름이 있었다. 연민, 경멸, 혐오, 동정... 레이는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검은 눈을 다시 마주한다. 손바닥 아래 닿은 남자의 맨 가슴팍에서 둔한 심장 박동이 울리고 있었다. 레이와 눈을 한참이나 마주하고서야 카일로 렌은 살아있어야 한다는 걸 깨닫기라도 한 것처럼 느리게 눈을 깜박이기 시작한다. 남자의 맨 몸에서는 불에 타 아직 식지 않은 잿더미의 향이 났다.

남자의 입술이 움직였다. 레이는 카일로 렌이, 벤 솔로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우주에서 그녀를 가장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 존재가 그녀의 품 안에 있었다. 그녀가 상처입힌 것, 그녀가 파괴한 것, 그녀가 만들어낸 것. 레이는 가만히 고개를 숙여 남자의 가슴팍에 이마를 기댄다. 그녀는 그가 기다리고 있는 어떤 이름을 천천히 발음한다. 벤. 남자는 그 부름에 답하듯 양 팔을 벌려 그녀를 안았다. 레이의 입술에 그녀가 타인에게 유일하게 새긴 흉터가 닿는다. 남자가 살아있는 한, 그의 몸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었다.

이 남자가 죽으면 그녀에게도 상처가 남을까? 

레이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한다.